책 읽기 [내 운명의 비밀] : 명리 입문

명리학의 기원 그리고 음양의 기와 질

루이 사주 명리 2025. 8. 4. 20:00

 

 

수천 년의 역사를 장황하게 펼치지 않겠다. 간략히 보자. 도입부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문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명리학이 들어온 것은 고려말로 추정된다. 중국은 송나라 이후 원나라의 시기였다. 당시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사주 간명(看命)의 체계는 송나라 이전 시대의 연(年) 위주의 것이었다. 이는 태어난 해를 중심으로 보는 것으로 대개 ‘띠’를 가지고 운명을 논했다. 일명 ‘당사주’라 불린다. 중국에서는 송나라 이후로는 태어난 일(日)을 위주로 보는 자평명리학이 대세가 되었다. 명과 청을 거치며 많은 학자가 저마다의 이론을 펼치며 현대 명리학의 틀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명리학의 현대적 체계가 세워지기 아주 오래전 천간과 지지의 글자와 음양오행의 이론 등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 역시 고대 중국에서 기원했다. 흔히 전설로 내려오는 복희씨의 하도낙서(河圖洛書)를 역학의 기원으로 보고 이를 명리의 오랜 뿌리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일부는 맞는 이야기지만, 엄밀히 말하면 하도낙서는 주역의 팔괘의 기원으로 음양과 오행의 방위와 숫자의 개념이 있을 뿐 다른 명리학적 이론은 도출하기 어렵다. 즉, 점술의 영역이지 명리학의 영역은 아니다. 물론 사주 명리도 음양과 오행을 토대로 하고 있으니 근원적 뿌리는 그 시대로부터 왔다고 할 수는 있다. 지금과 같은 음양과 오행의 개념이 정립된 것은 한나라 시대 이후다. 당나라 때에는 가장 오래된 명리학 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허중명서]가 쓰였고 송나라 이후로부터 [적천수], [연해] 등의 저서가 나오면서 다양한 이론적 기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명나라 때에는 [삼명통회]가, 청나라에 들어와서는 [자평진전]이 나왔다. 명리학은 자평명리학으로써 이론적으로 완성이 되었다.

 

청나라에서 완성된 명리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리를 잡기 전에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에 들어간다. 일본 학자들에 의해 해석되고 적용된 방식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자평명리학은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뒤에 우리에게로 전해졌다는 아쉬움이 있다. 다행히 후대의 학자들이 중국의 원서를 다시 공부한 뒤에 새로운 학설을 설파하면서 현재 우리는 대만과 함께 현대 명리학의 양대 산맥으로 우뚝 서 있다.

 

 

음과 양, 그리고 오행(음양의 기와 질)

 

명리학은 자연철학이라고 했다. 우주와 자연의 이치를 통섭하는 학문이다. 그 시작은 기(氣)와 질(質)을 논하는 것이다. 청나라 심효첨 선생의 [자평진전]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천지지간(天地之間) 일기이기(一氣而己).

 

천지에는 이미 하나의 기가 있다는 뜻이다. 이 첫 문장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거대하다. 하나의 기(氣)라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무극(無極)이요 태극(太極)이다. ‘이미’ 있다고 하였으니 우주가 탄생하기 전에도 이 기(氣)는 존재했다. 이 지점에서 고대 동양철학의 논쟁이 벌어진다. 바로 무에서 유가 탄생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다. 안과 밖의 경계와 끝이 있고 없음의 문제까지 다다르면 음양에 관해 생각하기도 전에 생각은 허공을 떠돌게 된다. 음양의 분화가 생기는 실체로 무극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태극이 발현하기 위한 개념이다. 무극이 곧 태극이다(無極而太極)라는 말이다. 흔히 우주는 완전한 무(無)의 상태에 있다가 하나의 기가 모여 점이 되고 그 점이 폭발(빅뱅)하면서 형성됐다고 한다. 태극은 바로 이때 폭발과 동시에 태어났다. 무극이 태극의 상태로 바뀐 것이고 음(陰)과 양(陽)도 이때 동시에 생겨났다. 음양이 생기면서 비로소 변화라는 것이 생겼다. 그 변화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명체로 사는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무와 유, 있고 없음이라는 하나의 기(氣)에서 멈춤과 움직임이라는 생명 운동의 시발이 생긴다. 움직임(動)은 양이고 가만히 있음(靜)은 음이다. 태극이 곧 음양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태극이 생기면서 움직임과 가만히 있음이라는 생명 운동이 생기게 되었으니 음양이 드러났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 덧붙여 그 음과 양이 충만할 때와 시작할 때를 나눈다. 그것을 자평진전에서는 노(老)와 소(少)라 칭하였다. 그리고 또다시 극동(極動)과 극정(極靜), 소동(少動)과 소정(少靜)으로 나뉘는데 이것이 사상(四象)이다. 소위 태양, 태음, 소양, 소음으로 불리는 그것들이다. 사상이 오행(五行)의 근간이다. 태양은 화(火), 소양은 목(木), 태음은 수(水), 소음은 금(金)이고 토(土)는 목화금수의 충(沖)하는 기운이 만들어낸 것이다. 명나라 유백온 선생의 [적천수]에 따르면, 소양인 목은 음에서 양이 소생하여 점차 자라는 것이며, 태양 화는 양의 기세가 왕성함이 극에 이른 것이며, 소음 금은 양에서 음이 소생하여 점차 자라는 것이며, 태음 수는 음의 기세가 왕성함이 극에 이른 것이라 하였다. 토는 음과 양의 중앙에 위치하여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결국 기의 순환과 조화가 핵심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음양과 사상(四象)의 상생 기운을 기(氣)라 하고 이것이 응축되어 물질이나 형상으로 나타난 것을 질(質)이라 한다. 사상의 기운을 질로써 담아내는 것이 토(土)다. 인간은 이러한 기운을 잡아(質) 살아간다.

 

음양에서 오행이 나온다. 그렇게 나온 오행 안에서도 다시 음양이 나뉜다. 예를 들면, 천간의 글자인 갑(甲)과 을(乙)은 목의 양과 음이다. 하늘에서 생기(生氣)가 나와 퍼지는 것이 갑이고 이 생기를 받아들인 것이 을이다. 갑은 을의 기(氣)이고 을은 갑의 질(質)이다. 생기(태동하는 기운)가 널리 퍼지는 것이 갑의 갑이다. 생기가 모여서 맺히는 것이 갑의 을이다. 만물이 가지와 잎을 가지게 되는 것이 을의 갑이고 그 상태가 무성한 것이 을의 을이다. 방향성을 갖춘 것이 갑이고 을은 그 기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을은 결국 갑의 질(質)로서 견고한 상태가 된다. ​​

 

 

갑과 을은 하늘에서 운행하는 양과 음이다. 지지(地支)의 글자인 인(寅)과 묘(卯)는 땅에서의 목의 양과 음이다. 그러므로 갑을을 양으로 인묘를 음으로 볼 수 있다.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니 그렇다. 음양은 상대적이고 변화하는 것이다.

 

천간이 상징하는 하늘의 기운은 무엇일까? 상(象)을 이루는 것이다. 지지가 상징하는 땅의 기운은 무엇일까? 형(形)을 이루는 기운이다. 상은 우주 운동 원리의 추상형이며, 형은 그것을 담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역시 기와 질로 설명할 수 있다. 갑과 을은 하늘에서 운행하고 인과 묘는 땅에서 받아들인다. 갑을은 하늘에 있으니 동(動)하기만 하고 자리를 잡지 못한다. 그러나 인(寅)은 오직 첫 달인 1월이지 다른 월(月)이 되지 않는다. 갑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바뀌어도 지지의 양목(陽木)에 해당하는 월은 반드시 인(寅)에서 세운다. 뿌리를 내린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을도 마찬가지로 묘(卯)에서 세워진다. 기(氣)의 측면에서 보면 갑이 을보다 왕하고 질(質)의 측면에서는 을이 갑보다 왕하다. 그러므로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갑이 을보다 강한 나무이니 쓰임이 있으려면 쪼개야 한다든지 을은 미약한 싹이니 보존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음양의 이치를 알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다른 오행도 마찬가지의 이치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토(土)는 목화금수의 충(沖)하는 기운이니 사계절 모두에서 왕하다.

 

​자평진전에서는 오행의 생극이라 하지 않고 음양의 생극이라고 하였다. 명리는 음양학이라 그렇다. 오행도 음양에서 나온 것이니 그 생극을 논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행을 계절로 이해하고 그 운행을 살폈다.

 

사시지운(四時之運)은 상생이성(相生而成)이라 하여 사계절의 운행은 상생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엄밀히 말하면 사계절이 돌고 돌면서 서로 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목생화(木生火)하고 화생토(火生土)한다. 토에서 일단 매듭이 지어지고 다시 토생금(土生金)하고 금생수(金生水)한다. 그리고 수는 다시 목을 생함으로써 순환을 이룬다. 일방이 일방을 생하는 개념으로 이해해도 상관없지만 서로 생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서로 어우러질 수 있는 기운들이다.

 

극(剋)의 역할은 무엇일까? 상대를 극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기운일까? 생함이 있고 극(剋)이 없다면 사계절이 성립되지 않는다. 목은 토를 극하고(木剋土) 토는 수를 극하며(土剋水) 수는 화를(水剋火), 화는 금을(火剋金), 금은 다시 목을 극한다(金剋木). 극한다는 것은 곧 취한다는 의미다. 취함으로써 생한다.

 

이 지점에서 다시 한번 동양철학의 심오함을 알게 된다. 극이란, 절제하여 생을 그치게 하고 그것이 수렴하여 발설의 기틀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그 절도가 있어 사계절을 이룬다. 주역에서도 이 극의 작용을 중요하게 여겼다. 사람에 비유하면, 먹고 마시기만 하면 제 명대로 살 수가 없고, 배부름을 알게 하여 멈추고 거두었다가 배설해야 하는 것과 같다. 다시 배고픔을 느낀 뒤에 생을 위해 먹고 마시는 순환을 한다. 목(木)의 기운이 여름에 극에 다다랐다가 가을에 거두고 저장해야 다시 겨울을 거쳐 봄에 생하는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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